조상꿈
나이가 들어서도 자주 꿈이 보인다.
아무 뜻도 없는 개꿈들이라 이내 잊어 버린다. 꿈해몽같은건 에당초 믿지도 않는 편인데 안사람은 가끔 하루해가 다 갈무렵이면 어떤 소식을 들어려 지난밤에 그런 꿈이 보였는가 하는 소리를 가끔 한다. 여인네들은 꿈을 잘도 기억하는가보다.
깨고 나면 내용도 없는 실없는 개꿈들이라 이내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런 내가 어릴 적 꿈중에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꿈이 있다. 돼지꿈이라도 꾸어 봤으면 로또라도 한번쯤 사 볼텐데 돼지꿈이야기가 아니다.
내 나이 17~8세 쯤,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우리 집은 부산 중구의 보수동 산동네에 살고 있었다.
영도 남항동에 살다 1959년도 사라호태풍이후 임시 거처인 동대신동 당시 동아대학교 정문 부근에 단간방에 잠시 살다가 초등학교 5학년때 식구가 늘어나면서 산동네인 보수동으로 이사를 왔었다. 우리집이 산동네 제일 높은곳 평지에서 걸어 오르내리려면 숨이 헉헉대기 일수인데 몇 년을 살다보니 고향집같이 정든집이였다.
지금은 산복도로가 생기면서 우리 집터는 90%이상이 도로가 되어 대략 이 부근이라는 짐작만 할 뿐 옛 흔적을 찾아 볼 길 없다.
우리가 보수동 산동네 이사를 한 1960년대 초, 당시 산 동내는 판잣집들 뿐이었는데 지붕은 루핑지붕으로 가끔 루핑을 갈아 비가 새는 것을 방비하면서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루핑지붕이란 스레트지붕이 생겨나기전 아스팔트를 두꺼운 종이시트에 바르고 광석가루를 발라 판자집등의 지붕으로 사용한 건축 재료인데 햇볕에 오랜 세월 노출되면 표면이 눅진해 지면서 급급히 표면이 상하게 돼 비가 새어 보통 2, 3년에 한 번씩 교체해 주어야 했다.
그 루핑을 걷어 내면 판자지붕이 있으며 판자아래는 종이로 된 도배 천정이 나타난다. 합판이 귀하고 비싸 당시에는 철사를 엮어 종이를 여러 겹 덧대어 도배를 했는데 몇 년이 지나면 더러워져 그 종이 위에 또 도배를 하여 천정도배지는 두툼하게 불어 난다.
장마철 비가 자주내리면 루핑지붕에 비가 스며들기 일쑤였다. 그 빗물이 천정에 고이게 되면 천정에 구멍을 내어 빗물이 구멍을 통해 똑똑 떨어지게 해 줘야 한다. 그러니 방안에는 이곳저곳에 냄비나 큰 그릇을 놓아 빗물을 받아내곤 했었다. 그러지 않으면 고인 빗물이 한꺼번에 떨어질 수 도 있었으니 말이다.
방에 놓아둔 그릇에 떨어지는 물소리는 지금 생각해 보니 오케스트라 연주같이 느껴진다. 어떤 그릇은 툭툭, 또 어떤 그릇은 뽕뽕, 그릇의 종류와 크기와 빗물 떨어지는 주기가 가지각색이니 히얀한 소리들이다.
어느 장마 비가 오던 밤,
깊은 잠에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느닷없이 보였다. 생전의 야윈 모습이였는데 쿨럭쿨럭 입안에 침을 모으시더니 내 얼굴을 겨냥해 침을 뱉는다.
너무나 급작스런 상황에 재빨리 고개를 옆으로 비켜 가래침을 피했는데 바로 옆에 있던 책상다리에 머리에 혹이 날 정도로 헤딩을 했었고, 그와 동시에 내가 누웠던 천정에 고였던 빗물이 한바탕 쏟아져 내려 이부자리를 모두 버렸다.
종이천정에 고였던 빗물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한꺼번에 쏟아졌던 것이다. 한밤중에 식구들이 모두 깨어 한동안 법석을 떨어 빗물소동을 처리했던 기억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머리의 불거진 혹은 일주일이 넘도록 만지며 아파 했는데 식구들은 '조상덕으로 죽지 않고 살았다’ 한다.
많은 양의 물벼락은 피했지만 떨어지는 물벼락에 설마 죽기까지야 할랴구. 너무 비약한 것 같다.
그러고보니 그 이후에도 자전거타다가 버스에 아슬아슬 비켜 큰 사고를 피한적 있었고, 졸음운전으로 큰 사고 낼뻔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나는 지금까지 조상덕을 단단히 보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두달전 2년에 한번씩 검진해야 했던 무료종합건강검진을 시간없다는 이유로 아직 한번도 받은적 없었는데 운전면허갱신때 필요한 신체검사를 겸해 난생 처음 우연히 받았던 종합검진에서 대장암직전까지 발전한 2센티정도의 선종성 용종이 발견되어 며칠전 큰병원에 입원하면서 말끔히 제거한적 있었는데 이 역시 조상님의 큰 은덕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약 10년전 고향의 산소를 돌보다가 말벌에 쏘인 후, 아직까지 피부과 약 신세를 지고 있다.
30년 가까이 문중행사등의 집사를 맡고 있는데 빈번한 예초기사고와 나의 말벌사건이후에 벌초작업을 농협벌초대행사로 바꾸었는데 나는 과연 조상님들께 효를 다하고 있는가.
유가면, 구지면등 문중의 산소 40기정도가 여러군데 흩어져 내가 벌초에 참여하지 않으면 젊은이들은 묘소위치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지금이라도 묘소를 한곳으로 옮겨 물러 주어야 할 때인데 몇몇 당숙들의 반대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니 이 어이할꾜..
꿈이야기가 다른곳으로 글이 흐를것 같아 이만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