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참 이순
가끔 집에서 모이기만 하면 야식을 배달시키거나 어떤 때는 남포동까지 나가 냉채 돼지족발, 빈대떡 등 두 손 잔뜩 사가지고 온다. 저녁까지 잘 먹고 이제 곧 잘 시간인데 잿놈들은 그 새 다시 배가 출출한 시간인 모양. 모처럼 부모 집에서 동기간에 만났으니 밤늦도록 이야기하며 놀고는 하는데 안주꺼리가 좋으니 소주가 제격이고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되는 치킨종류에는 시원한 맥주가 빠지지 않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함께 어울려 밤늦도록 먹고 마시고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는데 늘어나는 거라고는 뱃살밖에 없었던 터. 야식 먹는걸. 말리고는 싶은데 아이들에게 싫은 눈치를 보이지 않아야 한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려는데, '아버지도 좀 드셔보이소.' 그런다. 그러면 잠시 나와서 먹는 둥 마는 둥 저녁 식사 후 닦은 이빨 또 닦기 싫기도 하고 '천천히 먹어라. 난 먼저 잘란다.' 그러면서 자리를 슬그머니 피하고 만다. 이렇게 시작된 야참 술자리는 내일이 휴일이면 새벽 두세 시경 되어야 끝난다.
자라면서 누나에게 대들고 어지간히 싸우기도 하더니 이제는 누나 말이라면 거역 않고 순종 잘하는 동생, 두 살 터울의 누나도 예전보다 더 으젓해진듯 하다. 나이가 가장 위인 사위가 야참시간의 리드가 된다. 시누이를 형님이라 부르지 않고 언니라 부르며 무조건 잘 따라주는 며느리는 우리 집 복덩이다. 술이라고는 한 방울도 못하면서 분위기 잘 맞추고 행여 방에서 주무시는 아버님 깰까바 조근조근 큰 소리 없이 속닥거린다.
며칠 전 어린이날 연휴 때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거실에서 조용조용 이야기소리가 안방까지 약하게 들린다. 이야기 주제는 내년이 아버님 칠순인데 어떻게 해드릴지 의논인 모양이다.
부모님 두 분의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모양인데 나는 어떻던 관계없는데 안사람은 해외로 여행 다니기 싫다는 예기도 들린다. 함께 자리한 안사람은 우리나라도 좋고 가보지 않은 곳이 수없이 많은데 차라리 그 경비로 며칠 가족전체가 떠나는 국내여행을 주장한다.
해외여행은 자유여행이 가장 좋겠지만 가방끈이 짧아 외국어가 되지 않으니 난감하다. 간혹 가계를 찾는 외국인들이 오면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손짓 발짓 엉터리 영어이니 해외여행은 어쩔 수 없이 패키지여행을 선택해야 한다. 패키지여행도 옵션을 잘 선택하면 괜찮긴 한데 상품 고르기가 쉽지 않고 무엇보다도 줄줄이 사탕처럼 줄지어 다니는데 정말 싫다.
안사람은 낯선 외국에서 단독 외출은 말리지만 함께 간 일행들이 호텔 숙소에서 고스톱이나 치며 머물고 있을 때 우리는 시내 뒷골목을 두시간정도 산책을 즐긴다. 밤 시간에 약간은 겁도 나지만 여행사 가이드가 보여주는 정해진 코스만을 보는 게 아니라 숨어 있는 뒷골목을 풍경을 보고 싸구려 먹거리도 맛보고하는 것도 나름 추억꺼리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이야기라 이제는 체력이 떨어져 혼자 다닐 용기도 나지 않는다. 북경에 갔을 때 사진촬영금지구역에서 사진 찍다가 공안원들에게 잡혀 까딱했으면 큰 곤욕을 치룰뻔 한 기억도 뇌리를 스쳐간다. 또 태국어디인가... 소중한 여행시간 다 뺏어 버리는 별관심에도 없는 보석판매장, 라택스 이불공장을 쇼핑하는 그런 관광은 이제 그만가고 싶다. 나는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인데 안사람은 식사 때 맡게 되는 그 나라의 진한 향료냄새에 질색을 한다.
이런 저런 생각에 나도 국내여행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국내여행이야 언제든 마음먹고 부담 없이 떠날 수 있고 돌아 올수 있지 않은가. 자식들이 큰 마음먹고 거금 들어 보내준다는 해외여행을 마다 할 수도 없으니 나의 결정만 남은 셈인데 여러 생각 말고 안사람 생각을 따르기로 하자. 장모님이 해외는 싫다고 하시니 사위는 제주도를 생각하는 모양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여행일정을 모두 맡기고 부모들은 따라만 다니자. 그래 아무려면 어떠랴. 눈 딱 감고 2박히나 3박쯤이면 족하리라.
국어사전에도 없는 신조어 야참. ‘참-’이란 원래 힘든 일하는 일꾼들이 잠깐 쉬면서 간단한 음료를 즐기는 걸로 알았는데 국민 모두가 즐기는 문화가 되어 버렸다. 아이들 휴대폰으로 우리 동네 맛집 찾는 건 일도 아니고 전화주문에 결제까지 순식간이다. 그러면 대개 10~20분 내로 ‘딩동~’ 소리와 함께 배달이 온다. 야간 통행이 금지되었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을 거다. 늦도록 야참을 즐기는 게 그냥 마음에 안 들기만 하더니 이 날 야참시간은 예외인 듯하다.
시위를 떠난 화살의 속도와 비유된다는 인생. 엊거제 나이 예순인가 했는데 어느새 나이 이순(耳順)의 끝자락이다.
자면서 불편한 어깨쭉지 때문에 몇 번이나 뒤척거려 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밤잠 설쳐대는 게 하루 이틀인가. 그날 밤, 잠결에 아이들 소곤대는 소리가 귀를 때렸지만 이내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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